千善姬
(1903)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천선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6일에 평양(平壤) 숭실학교(崇實學校) 학생인 김무생(金武生)이 서울을 거쳐 3월 7일 대구에 도착했다. 그는 대구 남산정(南山町)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에 가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상황을 전달하고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했다. 이에 3월 8일 아침 7~800명의 군중들이 시장을 떠나 본정(本町)‧경정(京町)을 거쳐 동성정(東城町)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신명여학교 학생의 경우 최정술 등은 서문시장에서, 이영현 등은 동산교 근처에서, 기숙사생들은 교내에서 만세를 외쳤다. 신명여학교 학생이던 천선희도 그러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로 인하여 대구경찰서 경찰에 체포되어 검사의 신문조서를 받고 3월 9일 대구감옥으로 송치되었다.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에 대한 기소유예 결정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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