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敬東
1901-09-05 ~ 1979-08-26·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경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전남 광주(光州)에서 만세시위를 펴다가 일경에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1942년 여수(麗水)에서 애양원(愛養園)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원생들에게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붙잡혀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