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權順
1890-05-30 ~ (1952-05-3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梅山權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권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7년 6월 전라남도 무안군 압해면 매화리에서 매화리농민조합 조합원의 소작쟁의에 동조하였다. 매화리농민조합은 “농민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교양을 촉진하고, 상호 부조의 원칙에 의해 단결의 힘으로 구제(救濟), 친목을 기할 것”을 주의와 강령으로 삼았다. 나아가 소작료 불납동맹을 조직했다. 같은 해 9월 지주 서인섭(徐寅燮)이 소작료 불납동맹에 대응하여 소작인에 거주하는 가옥에 대해 가옥명도(家屋明渡)를 시도했다. 최권순은 매화리농민조합원들과 함께 집달리(執達吏)의 강제집행을 방해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8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요(騷擾), 공무집행 방해, 상해’의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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