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戴玉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대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청풍(淸風) 사람이다. 의병으로 충북 제천(堤川)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에 최대옥은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동료 20여 명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충북 제천군 근우면 부근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반 비상 수단으로 같은 해 음력 8월 25일 같은 면 비치리에서 소 1마리를 징발하는 등 군수품 보급에 주력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5월 9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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