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大形
(187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대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구실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여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최대형은 1909년 음력 1월 28일~2월 2일, 2월 18~28일경 사이에 이성화의진에 참여하여 약 50명의 의병과 함께 태인·정읍(井邑)·고창(古阜) 등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하여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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