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德用
1899-03-27 ~ 1961-06-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덕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옥천군 이원면(伊院面) 장날에 육창주(陸昌柱)·허상기(許相基)·김용이(金龍伊)·조이남(趙伊南)·이호영(李湖榮)·공재익(孔在翊)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만들었다. 이날 이원장터에 모인 30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배부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내를 행진할 때 육창주·허상기·김용이 등이 헌병주재소로 연행되자 주재소로 몰려가서 기물을 파괴하고 유치장을 습격하여 김용이를 구출하고 다른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군헌병에게 맞서 대항하다가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소요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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