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德化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덕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구성군(龜城郡) 사기면(沙器面) 신시(新市)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구성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부터 시작되었다. 11일 오후 2시경 남시에서 4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15명이 체포되었다. 그 뒤 3월 30일에도 2차례에 걸쳐 3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이 읍내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가면서 이를 해산시키려는 일본 군경과 충돌하여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하였다. 다음 날 31일 남시 장날 정오에 5,000여 명이 시위를 일으키며 헌병주재소를 포위하여 헌병들과 대치하였다. 그러나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 7명이 발생하고 5명이 체포되었다. 또한 이날 정오 신시(新市)에서도 1,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이다 헌병들의 총격으로 부상자 1명이 발생하였다. 그 다음 날인 4월 1일에는 읍내,남시,신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일어났다. 읍내에서는 900여 명이 시위를 시작하자 일본 군경이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부상자 3명이 발생하였다. 신시에서는 1,500여 명이 시위투쟁을 재개하다가 경찰의 발포로 5명이 부상당하고 30명이 체포되었다. 신시에서 시위를 벌어다 붙잡힌 최덕화는 1919년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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