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東洛
1892-03-10 ~ 1963-10-0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동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기독교 인사들과 창신(昌信)·의신학교(義信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마산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이갑성(李甲成)이 창신학교 교사로 있던 임학찬(任學瓚)을 만나 만세운동의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의신학교 교사로 있던 박순천(朴順天)에게 세브란스의전에 다니던 배동석(裵東奭)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1919년 3월 초 최동락은 최용규(崔鏞奎)·명도석(明道奭)·신택식(辛澤植) 등과 협의하고, 또 학생대표에게도 연락하여 구마산(舊馬山)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준비물은 보부상(褓負商)으로 가장하여 장터로 운반되고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는 여학생들의 치마폭에 감추어 장꾼 사이에 끼어 반입되었다. 오후 3시경 학생을 비롯하여 장꾼들까지 3천여 명의 군중이 모이자 만세운동은 시작되었고, 독립만세 소리는 장터를 진동시켰다. 계속되는 대규모의 시위에 속수무책인 일본 경찰은 증원군의 응원을 받아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이를 저지하였는데 이때 최동락은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그는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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