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東律
미상 ~ (1908-06)·조선
이명·자·호 崔京律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동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의병장(義兵將)으로 함경남도 갑산(甲山)·홍원(洪原)·북청(北靑)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최동률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무력투쟁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1907년 12월 경 북청군 니곡사(泥谷社) 부근에서 원기풍(元基豊)과 함께 40여 명의 병력으로 거의하여, 차도선(車道善) 의진과 협력하며 함남 갑산(甲山)·북청(北靑)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8년 3월∼5월 사이 홍범도(洪範圖) 의진에 소속되어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약 9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북청군 니곡사 삼기리(三岐里) 및 통파(通坡) 부근에서 활동하다가 진을 나누어 최동률은 약 50여 명을 이끌고 갑산(甲山) 방면으로, 원기풍은 약 40여 명을 이끌고 함흥(咸興) 방면으로 각각 진출하였다. 이후 1908년 6월 경 갑산군 금창(金昌)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