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同伊
(188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동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국호남(鞠湖南) 의진에 참가하여 전북 고부(古阜)·흥덕(興德)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같은 시기에 국호남 의병장이 의진을 조직하여 대일 투쟁을 전개하자, 최동이는 1909년 경 국호남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그의 지시에 따라 군자금 및 군수품 수합에 나섰다. 그리하여 그는 국호남 의병장의 지휘에 따라 같은 해 5월 30일 채봉선(蔡鳳善)·박춘집(朴春楫) 등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등짐장수로 가장한 뒤 고부군 거마(巨麻)면 평교(平橋)리의 일본인 대삼오랑(大森五郞) 집을 습격하였다. 이 때 그는 집을 보고 있던 일본인 중진덕장(中津德藏)을 구타 응징하고 총기 6정과 탄약 70발 및 도검 1자루 등 무기류와 군수품을 노획하였다. 그러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