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萬得
1900-11-0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만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8일 천도교도 양준성(梁俊成) 등이 음성 읍내에서 군중들에게 독립만세를 불렀다. 10일 후인 3월 28일 음성면(陰城面) 읍내리(邑內里) 음성시장에서 10대 서당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7일 저녁 무렵에 음성면 초천리(草川里) 정기선(鄭騏善)의 서당에서 마을 청년인 김영익(金榮翼)이 서당 학생인 최만득(崔萬得)·정민영(鄭玟永)·정대영(鄭大永)·정문영(鄭文永) 등에게 ‘지금 조선은 어느 곳에서나 독립을 희망하여 그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우리들도 대한국민으로 일동이 함께 내일 음성 읍내 시장에 나아가 대한국독립만세를 외치자. 또한 시장 군중들에게 권유하여 동일하게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최만득 등은 김영익의 제안에 찬성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3월 28일 오전 10시경 이들은 초천리 마을에서 출발해 약 15리 길인 음성 읍내 시장으로 나아갔다. 오후 2시경 음성시장 미곡상점 앞에서 최만득 등 4명은 군중들을 향해 대한국독립만세를 수차례에 걸쳐 외치며 함께 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했다. 최만득은 음성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일 음성경찰서에 구류된 후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검사분국에 송치되었다. 4월 11일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선고받았고 5월 8일에 형이 확정되어 태형의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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