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晩甫
(1877)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崔明鎭, 崔萬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만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초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에서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유석 등은 3월 초순 원곡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마침내 이들은 4월 1일 오후 8시경 원곡면사무소(元谷面事務所) 앞에서 면민 약 1,000명을 동원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성면(陽城面) 동항리(東恒里) 방향으로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에 이르러 이유석·이희룡 등은 군중 앞에 나서, ‘조선은 독립국이므로 일본의 관청과 일본인을 몰아내자’고 주창하였다. 이때 밤 9시경 양성면민 수백 명과 합세한 이들은 밤 10시경 다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안성으로 통하는 전화선을 절단하고 전주(電柱) 3개를 잘라 넘어뜨렸다. 계속하여 동리(同里) 일본인 잡화상과 대금업자의 집, 양성면사무소(陽城面事務所)를 파괴하거나 불 태워버렸다. 다음 날 오전 4시경 마지막으로 원곡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사무실 1동과 물품 및 각종 서류들을 전부 불 태워버렸다. 최만보는 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양성주재소에 돌을 던지는 등의 항쟁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