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萬奉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만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음력 7월부터 강원도 정선(旌善)ㆍ평창(平昌), 충북 제천(堤川) 등지에서 정병화의진(鄭炳華義陣)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이후 해산군인이 의병부대에 참여하면서 의병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해산군인들이 들어오면서 의병 항쟁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대표적인 의병장은 박화남(朴華南)ㆍ민긍호(閔肯鎬)ㆍ오정묵(吳正默)ㆍ김치영(金致永)ㆍ한상열(韓相說)ㆍ이강년(李康年) 등이었다. 이강년 휘하의 정병화는 강원도 횡성(橫城)ㆍ평창, 충북 제천 등지에서 많을 때는 500명, 적을 때는 4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독자적인 의병 활동을 펼쳤다. 최만봉은 정병화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15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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