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明烈
1914-11-20 ~ 1990-04-0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명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2년 6월 4일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서 최판옥(崔判玉), 김판권(金判權) 등은 이날이 음력 5월 1일로 메이데이에 해당하므로 시위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이들은 당일 청년회원 70여 명을 규합하여 뒷산에서 산유회(山遊會)를 개최하고 소작권 이동 방지를 협의했다. 최명렬은 이들과 함께 북을 치며, 나팔을 불고, 노동가를 부르면서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를 전개했다. 운암리와 백계리에서 기존의 소작인을 대신해 소작 계약을 맺은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경고했다. 시위로 인해 약 50여명이 체포되었고, 관계자 24명은 같은 해 6월 목포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1933년 9월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暴力行爲)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공판에 회부되어 벌금 30원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