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明秀
(187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명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仙掌面) 군덕리(君德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1일 아산군 온양면(溫陽面)의 온양공립보통학교(溫陽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후 3월 15일까지 온양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주도했다. 군덕리, 돈포리(頓浦里)의 정수길(丁壽吉)·서몽조(徐夢祚)·오상근(吳相根) 등은 3월 1일 조선 독립 선언을 발표한 이래 전국 각지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독립선언을 지원하기 위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이에 4월 4일 장날 군덕리 선장시장에 나아가 시장 군중들에게 ‘조선독립시위운동’에 참여하라며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했다. 이에 돈포리 최명수(崔明秀)도 박성오(朴成五)·한순오(韓淳五) 등 같은 마을 40대 장년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200여명의 시위 군중들은 오후 2시 30분쯤 선장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르고 돌을 던지며 구내로 들어가 창문 유리 등을 파손했다. 이에 온양에서 급파된 일본 헌병과 보병들이 총기를 발포해 1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이 체포되었다. 이처럼 최명수는 선장면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장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20일 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40도의 즉결처분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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