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文武
(1879) ~ (194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문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7년경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0년 초반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 봉오동(鳳梧洞)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에 들어갔다. 독군부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과 연합하여 조직된 무장투쟁단체였다. 최문무는 1920년 3월 26일 대한북로독군부 모연대장(募捐隊長)으로 함경북도 온성군(溫城郡) 유포면(柔浦面) 남양면을 습격하고 동년 8월경 대한북로독군부 제1대장으로 무장투쟁의 선봉에서 활동했다. 1920년 음력 11월 중에 무장한 30여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본부를 출발하여 1922년 음 2월에 이르기까지 간도 각지로 돌아다니며 5천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 음 3월 상순경에는 재무원 최태여(崔泰汝)와 함께 70여 명의 무장한 부하를 거느리고 음 7월에 이르기까지 역시 간도지방으로 돌아다니며 수천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동년 음 9월 중에 일본 토벌대가 간도에 들어오자 노령(露領)으로 피하여 계속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1923년 9월 중순경에 다시 간도로 나와 수십 명의 무장한 부하를 거느리고 일본관헌의 경비 상태를 탐정하는 동시에 수천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최문무는 1925년에 체포되어 동년 2월 30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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