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枋德
(189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방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5월 상순 최방덕과 정희용(鄭熙鎔) 등은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八乙面) 창효동(彰孝洞)에서 모였다. 회령지방에 독립운동 연락기관이 없어 군자금 모집이 어렵다고 논의했다. 그리하여 음력 5월 15일 회령군 팔을면 금생동 최방덕의 집에서 오순준(吳舜濬)‧허익근(許益根)의 주도로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에도 북간도 국민회(國民會) 회령지부를 설치하자고 협의하였다. 오순준을 지회장으로 국민회 회령지부를 조직하고, 회원 1인당 2원씩을 내기로 했다. 이때 마침 국민회 통신국장 박용훈(朴龍勳)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함북독판부 설치를 제의했다. 1920년 음력 7월 초 최방덕의 집에서 함북독판부 회령총판부(會寧總辦府) 설치가 논의되고 오중묵(吳重黙)이 독판(督辦)‧오순준이 통신사장(通信司長)‧허익근이 재무사장(財務司長)‧최방연(崔枋衍)이 경무사장(警務司長)에 선임되었다. 1920년 음력 8월 초순 국민회 회령지부원들을 함북독판부에 가입시켰다. 음력 9월경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안정근(安定根)과 왕삼덕(王三德)을 만나 운동 방법을 협의했다. 더불어 국민부 본부에서 권총과 탄알을 들여오고,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0년 12월 함경북도 경찰부에 체포되었다. 최방덕은 1921년 11월 14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폭발물취체벌칙 위반’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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