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秉寅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병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1월 만주(滿洲)에서 이탁(李鐸)의 주도로 27결사대(決死隊)가 조직되었는데, 이 단체는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찬성한 이완용(李完用) 등 5적신(五賊臣)과 조중응(趙重應)·송병준(宋秉畯) 등의 매국노를 처단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이 조직에 가입하여, 동년 3월 3일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상일을 맞아 친일 매국노들을 처단하는 계획에 따라 2월 거사하기로 하고 2월 26일 서울로 잠입하였다. 그러나 무기의 입수가 늦어져 3월 3일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대원들과 함께 역적들에 대한 성토문과 일제(日帝)에 대한 경고문 등을 독립문과 종각에 부착하는 등의 활약을 하면서, 역적의 처단기회를 노리던 중,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1년 1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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