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秉一
(1870) ~ 1941-12-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병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명천(明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2일 명천군 상고면(上古面) 운만대(雲滿臺) 선지곡(仙芝谷)에서 최주영(崔周永)외 수명과 더불어 주민 40여명을 집결시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1년간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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