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官
1880-02-13 ~ 1919-08-18·대한제국
이명·자·호 崔奉官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봉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최봉관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김태원의진(金泰元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태원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07년 장성(長城)에서 거의한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선봉장(先鋒將)이 되었다. 1907년 9월 9일 고창(高敞)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기도 하였으나, 동년 10월 4일 몽암(夢庵) 신덕순(申德淳)과 재차 창의하여 신덕순은 도독(都督)이 되고 자신은 선봉(先鋒)이 되었다. 그러나 순창 회문산(回文山)에서 일본군의 내침으로 신덕순은 체포되고 의병진은 일시 무너졌다. 곧 전열을 정비한 김태원은 12월 함평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였고, 일본군 토벌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일본군 지휘자 천단조장(川端曹長)과 부하를 사살하는 등 신출귀몰하게 활동하였다. 최봉관은 김태원의진에 참여하여 나주 출신의 김사준 등과 함께 함평·영광·나주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2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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