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基
1910-05-26 ~ 1977-05-25·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봉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구례(求禮) 사람이다. 1929년 11월 12일 전남 광주(光州)의 광주농림농업학교(光州公立農林學校) 3학년생으로 동교(同校) 독서회에 참가하여 활동하던 중,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이 피검되고 일제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등 탄압이 가중되자 동조시위를 계획하고 같은 학교의 학생 200여명과 함께 교실을 뛰쳐나와 구속학생의 석방과 일제 타도를 외치며 광주형무소로 시위 행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0년 10월 18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에서 금고(禁錮) 4월에 집행유예(執行猶豫) 5년을 받기까지 11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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