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明
(1899) ~ (1931-0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봉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정의부(正義府) 소속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일제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중국 동북지역인 만주의 화전현(樺甸縣)에서 성립되었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조직을 설치하고, 하얼빈 이남의 40여 개 현(縣)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한편 의용군을 편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앙행정위원회 위원장은 이탁(李沰)이었으며, 중앙행정위원은 현정경(玄正卿), 지청천(池靑天), 이진산(李振山), 김용대(金容大), 김이대(金履大), 윤병용(尹秉庸), 오동진(吳東振), 김동삼(金東三)이었다. 이후 정의부의 주류는 1929년 4월 국민부(國民府)로 발전하였다. 최명봉은 1931년 5월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송장면(松長面) 운천동(雲川洞)에서 활동하다 잠복 중인 의주경찰서(義州警察署) 경찰에게 포위되어 1시간 가량의 교화(交火) 끝에 전사(戰死) 순국(殉國)하였다. 순국 당시 품속에 정의부 제5중대라고 새긴 목각도장과 회중전등이 있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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