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奉稷
1896-06-23 ~ 1961-07-2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봉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봉영화(奉永華)·정만기(鄭萬基)·이명수(李明洙)·이인규(李麟珪)·김석만(金錫萬)·최병한(崔丙漢) 등과 함께 해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2월(음) 정순경(鄭順敬)의 권유를 받고, 김기한(金基漢)과 만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황해도지단의 설립과 군자금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동년 8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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