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鶴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봉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고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최봉학은 장헌문의진에 들어가 김재홍(金載洪)·김복선(金福善)·정만춘(鄭萬春)·이태이(李太伊)·이무범(李武範)·최용이(崔用伊)·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김종호(金宗號)의 안내를 받아 장기군 두산동(斗山洞)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력 2월경부터 음력 4월경까지 장기군·경주군 등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살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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