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宣一
1892-07-1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선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해주를 경유하여 옹진군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된 것은 3월 1일이었다. 「독립선언서」는 예수교인들에 의하여 그날로 읍내 및 흥미면(興嵋面) 등지에 배포되었으며, 3일 옹진읍 장날에는 일찍부터 독립정신을 가지고 있던 최희승(崔熙昇)·김선수(金善洙) 등에 의하여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도 하였다. 서당 교사인 최선일은 3월 3일 옹진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년 4월,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1919년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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