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聖權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성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2월부터 전북 순창군(淳昌郡), 전남 장성군(長城郡)에서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북 순창 출신의 신보현 의병장은 1908년 5월부터 1909년 12월까지 순창을 비롯한 전북 내륙 산간 지대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다. 그는 50~10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거나,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최산흥(崔山興)ㆍ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 전북 고창(高敞)ㆍ부안군(扶安郡) 등지에서 활동하는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과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력 윤 2월 26일 신보현의진에 가담하여 음력 3월 2일까지 신보현의 지휘에 따라 의병 약 70명과 함께 전남 장성군, 전북 순창군을 넘나들며 활동하다 같은 해 8월 초순 전북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8월 칙령 제325호 대사령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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