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成錄
1901-01-16 ~ 미상·현대
이명·자·호 崔成祿, 崔東俊, 崔班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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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성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1년 11월부터 1932년 음력 2월 사이에 중국 요령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에서 국민부(國民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제4중대 대원으로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이후 중국 환인현(桓仁縣)과 관전현(寬甸縣), 그리고 평북 벽동군(碧潼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국민부는 192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탄생한 조직이다. 이때 남만주의 국민부와 북만주의 혁신의회(革新議會)가 성립되었는데 국민부는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31년 11월 29일 환인현 마권자(馬圈子)에서 국민부 혁명군 제4중대 정사(正士) 김모산(金謀山) 등의 권유로 국민부에 가입하여 제4중대에 배속되었다. 1932년 음력 2월까지 군사교육을 받고 같은 해 3월경 상등병으로 진급한 뒤 환인현 사첨자(沙尖子)에서 통신 연락 임무에 종사하였다. 1932년 음력 9월부터 제4중대 제2소대장 차전망(車田網)과 함께 관전현 일대에서, 1933년 11월경에는 동지 이동옥(李東玉)ㆍ정상국(鄭尙國)과 함께 벽동군 오북면(吾北面)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34년 1월 8일 이후 8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오북면 대안에서 국내 잠입을 계획했으나 같은 달 11일 벽동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4년 2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강도 및 불법체포감금으로 징역 7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8년 12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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