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成梓
(188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崔泰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성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2년부터 중국 유하현에서 태극단·광복단·대한혁명군 통군서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1926년 5월 대한독립군 모연대장과 별동대 대장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경 중국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으로 이주하여 1919년 3.1운동 이후 장백현(長白縣), 임강현(臨江縣)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 김동준(金東俊) 등이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하고,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에 지단(支團)을 설치하였다. 의병장이었던 이범윤(李範允) 등이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자, 태극단(太極團), 광복단(光復團), 대한혁명군통군서(大韓革命軍統軍署)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5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이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여 모연대장(募捐隊長)이 되어, 같은 해 6월 이춘우(李春雨) 등 대원을 인솔하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11월 초순 함남 고원군(高原郡) 산곡면(山谷面) 건천리(乾川里) 김순정(金順貞)의 집에서 대한독립군 별동대를 조직하고 대장으로 선출되자, 12월 초 서병수(徐丙需, 이명 徐南山) 등 대원을 인솔하고 강원도 안변군(安邊郡) 위익면(衛益面) 일온리(日溫里) 김재언에게 군자금 200원을 모집하는 등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 10여 곳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7년 9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강도미수,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7년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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