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壽連
1887-09-15 ~ 1933-07-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수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수연은 인천(仁川)에서 부친 최성여(崔聖汝)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고 있던 중 1923년경 윤응념(尹應念)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윤응념은 임시정부 교통총장 손정도(孫貞道)가 국내에 파견한 김정목(金貞穆)과 연계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독립신문을 배부하면서 독립사상을 고취한 인물이다. 이들은 1923년 초부터 인천의 영종(永宗), 대부(大阜), 장봉(長蜂) 신불(薪佛島) 등 각 섬을 돌아다니며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모금하였다. '인천사건'이라 불릴 정도로 대대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이들은 아쉽게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 9월 최저 1년 6개월에서 12년까지의 징역을 받았다. 이때 함께 체포된 최수연도 이른바 강도 및 대정 8년[1919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1928년 1월 15일 가출옥될 때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4년 8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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