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秀香
1903-01-27 ~ 1984-07-25·현대
이명·자·호 崔賢淑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수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광주(光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지역의 독립만세시위를 위하여 교사인 박애순(朴愛順)·진신애(陳信愛) 등의 지휘를 받으며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을 준비하고 시위 당일에 시위하기 위하여 모여든 군중에게 배포하여 주면서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가를 행진하며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활동하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1920년부터 1924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서울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에 재학하고 있을 때 춘·추계방학을 이용하여 광주흥학관(光州興學 )에서 야학을 지도하며 청소년에 대한 계몽과 독립정신의 고취에 이바지하였다. 1928년부터 1940년 8월까지 동아일보(東亞日報) 광주지국장인 남편과 함께 동지국 총무 겸 기자로 임명되어 민족정신 계몽과 민족지 보급을 위하여 활동하는 등 구국운동에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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