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承鐸
(1885) ~ 1919-09-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승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그는 1919년 3월 3일 평남 강서군 읍내(邑內)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강서군의 3·1운동은 읍내와 사천(沙川)의 만세시위가 대표적인 것으로, 읍내의 만세시위는 기독교와 천도교측이 힘을 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그는 박상현(朴尙鉉)·박의현(朴義鉉)·홍석찬(洪錫燦) 등 기독교측 지도자들과 함께 천도교 교구장 이진식(李鎭植)·김병주(金炳疇)·황재호(黃在鎬) 등 천도교측 인사들과 만세운동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협의하고 만세운동 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거사일을 3월 3일 읍내 장날로 정하고, 차질없이 준비를 진행시켜 거사 당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는 읍내뿐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까지 사람들이 참가하여 4천 명의 군중이 동원되었다. 이에 일제는 군경을 출동시켜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행진을 탄압하였는데, 이로써 사망자가 아홉이나 되었고, 현장에서 10여 명이 붙잡혔다. 그는 당일 장터에 모인 다수의 군중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한 후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1919년 9월 1일에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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