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淵悳
1916-10-11 ~ 1976-10-15·현대
이명·자·호 崔光雲, 高山光雲
울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1월경부터 면서기 직을 지냈는데, 마쓰다(松田)의 지도를 받고 그에 감화되어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을 열망하게 되었다. 1939년 10월 29일 전만수(田萬秀)・남원수(南源壽)・다케다(武田) 등이 회합하여 창유계를 설립했다. 남원수의 제안에 기초한 설립 취지는 “1934년 검거로 인하여 괴멸한 울진적색농민조합의 목적과 같이 조선에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함과 동시에 조선 독립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우리 동지들로서 계를 조직하여 그 실행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친목계를 위장하고, 조선을 위해 일본제국의 통치 굴레에서 이탈・독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최연덕은 1940년 5월 임시헌(林時憲) 등과 회합하고, 창유계가 조선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인 사정을 알고서 가입했다. 같은 해 10월 19일부터 1942년 10월 25일까지 2회에 걸쳐 임시헌 등과 회합하였다. 이후 창유계 활동이 발각되면서 체포되었다. 1944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1945년 5월 8일 출옥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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