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영산
미상 ~ 1908-05-10·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영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최영산은 1908년 5월 전북 순창(淳昌) 등지에서 부하 50여 명을 거느린 의병장(義兵將)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즉 동년 8월 해산 군인들의 의병 참여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 계층도 유생,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전면전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전라북도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에 항전하였는데, 1908년 7월 결성된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 1907년 11월 결성된 유종여의진(柳宗汝義陣), 1907년 8월 결성된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 등을 비롯하여 그 외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김동구의진(金東九義陣) 등이 순창 지역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최영산은 순창에서 의병 50명을 휘하에 거느린 의병장으로 1908년 5월 10일경 군산수비대(群山守備隊)의 습격을 받았다. 이때 최영산을 비롯한 8명이 전사하고, 1명이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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