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禮洛
(187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예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구성군(龜城郡) 남시(南市)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7일 최예락은 선천군(宣川郡)의 김모(金某)로부터 독립선언서 500매와 주의서(主意書) 500매를 전달받았다. 이때 최예락은 관련 서류와 깃발을 양인항(梁仁恒)과 최성진(崔成珍)에게 넘겨주면서 시위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시켰다. 이들은 지시대로 태극기와 독립기를 만들어 11일 남시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11일 오후 2시경 최예락은 양인항,안승열(安承悅),홍양천(洪陽天) 등과 함께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남시에 모인 1,000여 군중도 따라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최예락을 비롯한 8명이 체포되어 시위 군중 다수가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최예락은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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