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完奎
1922-04-20 ~ 1986-09-2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완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여천(麗川) 사람이다. 1940년 6월 이래 일본 동경 소재 목백상업학교(目白商業學校)에 재학하면서 제1동경시립중학(第一東京市立中學)의 식당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이때 같이 근무하던 안명수(安明洙)·김태웅(金泰雄) 등과 함께 상호 동지적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한국의 실상과 민족의 장래를 깊이 논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족의식의 강화와 실력향상을 바탕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시기는 미일전쟁을 계기로 해서 미·소의 원조하에 한국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독립운동 방안을 구상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42년 6월 30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붙잡혔으며 동년 12월 23일 검찰에 송국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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