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用澤
1885-02-1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용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최용택은 경기도 장단군(長端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질 때, 장단군 대남면(大南面) 장대리(長垈里) 사는 함정원(咸貞元)과 이재삼(李在三)은 1919년 4월 1일 각 동장에게 만세시위 를 벌이도록 전하고 그날 각자 태극기와 등불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였다. 함정 원은 태극기를 들고 대남면 위천리(渭川里) 용산동(龍山洞)에서 동리 사람 약 100여 명과 대남면사무소와 사립명성학교(明成學校) 교정을 돌면서 독립만세 시 위를 하였다. 함정원은 4월 3일에도 계속하여 대남면민 1,000여 명과 함께 대남 면사무소와 학교를 돌면서 만세시위를 크게 벌였다. 장단군에서는 이외에도 음 력 2월 28일 밤에 항동리(項洞里) 도덕암산(道德岩山)에서 만세시위가 있었고, 30일 밤에는 장도면사무소(長道面事務所) 앞, 음력 3월 2일 항동리 구시장 자리, 3월 26일에 동장리에 있는 사립성화학교(聖化學校) 뒤에서 시위가 있었다. 시위 후 체포된 최용택은 4월 30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그는 10월 10일 출옥하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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