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源培
1904-12-17 ~ 1949-03-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崔源均, 崔重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원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8년 음력 12월 중순경 강원도 김화군에서 심능필(沈能弼)의 권유로 조선공화정치국이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한 후, 입적원(入籍願) 용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화정치국은 1924년 중국 훈춘(琿春)에서 이동휘(李東輝)의 명으로 국내로 들어온 김중산(金中山)·원길흥(元吉興)과 1927년에 국내로 들어온 진홍거(陳鴻巨) 등이 중심이 되어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 중 수운교도(水雲敎徒)를 규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강원도 김화를 비롯해 통천(通川)·화천(華川)·회양(淮陽)·평강(平康)·횡성(橫城)·홍천(洪川)·양구(楊口) 등지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1,0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는데 대부분 농민과 노동자였다. 별도로 100여 조목에 달하는 법률 조문을 제정했으며, 이동휘를 수석으로 내세운 아래 군무부(軍務部) 등 8개 부서를 두고 활동하였다. 또한 국외에서 권총과 탄약을 들여와 장차 거사를 실행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각지에서 단원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9년 5월 김화경찰서(金化警察署)에 조직이 발각되어 15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최원배는 5월 22일 김화경찰서에 유치되어 취조를 받고, 5월 말 기소되었다. 1930년 5월 31일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1년 2월 9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다음날인 2월 10일에 풀려났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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