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月上
1912-12-10 ~ 1948-10-1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月村英柱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월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최월상은 1929월 2월 전북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교생 오익선(吳益善) 등과 현 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5월 22일에는 동지들과 함께 친일 학생들을 구타하고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일본인교사 축출, 일본인에 대한 저항, 민족단결을 위하여 총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였다. 1930년 4월 하순, 최월상은 전교지도부(全校指導部)라는 독서회를 다시 조직하고 2학년 학생조직의 지도책임자가 되어 독서반 지도부(指導部)를 이끌었다. 이후 독서회가 해산되자 1931년 5월 20일경, 앞서와 같은 독서회를 조직하고 2학년 학생조직 지도책임자가 되었고, 다시 제3학년 대상의 사상 연구 독서회를 조직하고 활동하다가 퇴학당하였다. 최월상은 1931년 7월 전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일제의 만주파견 반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가두청년(街頭靑年)뉴스』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군산에서 부두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44년 7월 13일 최월상은 정읍군 이평면장에게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다는 등 시국담을 유포하다 또 다시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최월상은 1944년 8월 10일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소위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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