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乙圭
1928-08-18 ~ 1997-01-25·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을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청양(靑陽) 사람이다. 1942년 일제는 소위 내선일체(內善一體)를 내걸고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고 있어 이기춘(李起春)외 2명과 함께 조국독립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중국 동삼성(東三省) 지역 독립운동단체와 연결하려고 동삼성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1943년 봄 부여(扶餘) 청년훈련소에 강제 입소되어 있을 때, 학도병들이 탈출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44년 4월 24일 관폐대사(官弊大社) 부여신궁(扶餘神宮)의 설립 예정지이며 신궁(神宮) 건축으로 왕래가 빈번한 낙화암(洛花巖)에서 3회에 걸쳐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고 1944년 4월 26일 낙화암 위에 있는 백화정(百花亭)의 동쪽 기둥을 깍아 혈서로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써놓고 주민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다가 1944년 5월 2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44년 8월 6일 대전지방법원 강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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