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伊奎
1902-10-10 ~ 1961-02-0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崔伊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이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20년 4월 22·23일에 해남군 문내면(門內面)에서 윤인섭(尹仁燮)·임동수(林東秀)·박규성(朴圭星)·주봉옥(朱奉玉)·최이규(崔伊奎)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일제의 한국강점에 대하여 민족적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3·1운동 1주년에 즈음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위의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지원자씨명표(獨立萬歲志願者氏名表)」라고 이름을 붙인 연판장(連判狀)을 만들어 이름을 적고 태극기를 제작한 뒤 1차로 4월 22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이어서 다음날인 4월 23일에 시민 5백여 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문내면 동외리(東外里) 경찰관주재소(警察官駐在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때 시위군중은 일경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이 총격을 가해오자 해산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1920년 5월 13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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