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益武
1875-05-06 ~ 1932-08-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崔翼武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익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12월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 특파원 강태동(姜泰東)·이정래(李丁來)로부터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명의의 '적(敵)의 관공리(官公吏)인 동포(同胞)에게'와 임정(臨政) 내무총장(內務總長) 이동녕(李東寧) 명의의 '상업(商業)에 종사(從事)하는 동포(同胞)에게'라는 격문을 교부받은 그는 이 격문을 대구일원에 배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또한 서상하(徐相夏)·이종선(李鍾善)등과 함께 위 격문을 등사하여 배포하였으며, 〈대한민보(大韓民報)〉와 이범교(李範敎)로부터 전달받은 격문 등을 평안(平安)·전라(全羅)·경상도(慶尙道) 등에 배포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20년 12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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