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日成
(186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일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최일성은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순령면(順嶺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 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통천군에서 만세운동을 추진한 것은 3월 초부터이다. 천도교·기독교·노동 자·보통학교 생도가 각기 별도로 추진하여 만세운동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 나 비교적 다양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고저(庫底)는 순령면(順嶺面)인데 북쪽으로 원산 항구, 남쪽으로 장전 항구와 연락하는 주요한 항구로서 일본인 거주자도 많고 우편소까지 설치되어 있던 곳 이다. 여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4월 5일부터 7일까지 연 사흘 동안이었 다. 처음 4월 5일의 운동은 노동자가 일으킨 운동이었는데 나중에는 서당 생도 도 합세하였다. 고저의 운동은 6일에 절정에 달하였는데, 낮부터 시작하여 저녁 에는 1,300명의 군중이 면사무소, 주재소, 우편소를 순서로 파괴하고 일본인 주 택, 중국인 상점도 부수었다. 고저 항구의 치열한 항일운동은 7일에도 계속되 어, 오후에 시작하여 밤에는 전날과 같이 면사무소 등 관공서를 계속 공격하였 다. 고저의 만세운동은 처음부터 노동자가 계급 성격을 띄우고 운동을 전개했 다는 것이 특징적인데, 사흘 동안 서당 생도·농민 등 주민이 총망라되었고, 관 공서 공격, 일본인 주택과 중국인 상점의 파괴, 그리고 군중이 무기까지 휴대했 다는 점 등 무력 항쟁의 성격이 농후하다. 4월 23일 체포된 최일성은 함흥지방법원에서 7월 15일에 소위 소요·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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