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日新
1887-06-2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大山宗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일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仙掌面) 군덕리(君德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선장면 군덕리·돈포리(頓浦里)의 정수길(丁壽吉)·서몽조(徐夢祚)·임천근(林千根)·오상근(吳相根) 등은 3월 1일 이후 조선 독립 선언과 조선독립만세가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독립선언을 지원하기 위해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이들은 4월 4일 장날인 군덕리시장 장터에서 군중들에게 ‘조선독립시위운동’에 참가하도록 독립만세를 외치라고 권유했다. 신덕리(新德里)의 최일신(崔日新)은 진양현(陳良鉉)·이수만(李守萬)·김봉룡(金鳳龍) 등 같은 마을의 20대 청년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만세 군중들은 시장에서 선장헌병주재소로 이동했다. 오후 2시 30분경쯤 약 200명의 군중들은 주재소에 도착해서 만세를 외쳤다. 이어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구내로 들어가 창문 유리 등을 파괴했다. 온양에서 파견된 일본군들이 총기를 발포해 현장에서 1명이 순국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6명이 체포를 당했다. 최일신은 선장면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장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1일 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60도의 즉결처분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