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日永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일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옹진군(瓮津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옥고를 치렀다. 옹진군에서는 서울에서 해주(海州)를 경유하여 3월 1일 아침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3월 3일 옹진읍 장날에 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주도자 다수가 예비검속 당하여 크게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뒤를 이어 천도교인들이 3월 8일 옹진 읍내에서 천도교 옹진교구장의 지휘로 군민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3월 13일에도 시위를 펼쳤다. 이에 영향을 받아 옹진군의 각 면에서도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최일영은 3월 1일 독립선언서 15부를 수령하고, 3월 2일 옹진군 흥미면(興嵋面) 식여리(食餘里) 율목동(栗木洞)의 교회에 갖고 가서 교인들에게 선언서를 낭독해 주고, 이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다음날인 3월 3일, 그는 마을 주민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시위를 전개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최일영은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