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在文
미상 ~ 1908-01-0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재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흥해(興海)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여 갔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최재문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의병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1908년 1월 흥해군 서부면(西部面)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틈을 보아 탈출을 기도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