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点孫
(188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점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일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고종황제의 특사를 문제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황제를 즉위시킨 후 정미7조약을 강제하여 국권을 강탈하였다. 일본 통감부는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 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은 자결로 저항하거나 민족적 이해에 눈을 뜬 애국적 군대로 탈바꿈하여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촉발된 후기의병은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최점손은 이러한 후기의병기에 장단군 일대에서 활약하던 20여 명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총기로 무장하고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08년 3월 29일경 의병에 가담하였고, 장단군과 그 부근 지역에서 활약하다 피신하여 성북부(城北部) 삼청동(三淸洞)에서 거처하다가 체포되었다. 최점손은 이처럼 의병항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1908년 7월 31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10년을 받고 고초를 치르던 중 1910년 8월 29일 사면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