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指南
미상 ~ (194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지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1년 5, 6월 경부터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제1대 제1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1944年 8월 이전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하였다. 1938년 10월 10일 중국 무한(武漢)에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조선 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조선청년전위동맹(朝鮮靑年前衛同盟) 등이 중 심되어 결성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립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각 전 선에 분산, 배치되어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에 대한 정치선전 활동을 전개하였 다. 그러나 조선의용대 창립 직후 일본군의 공격으로 무한이 함락되자, 조선의 용대 본부는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으로 이동하였고, 조선의용대 제1구대는 호남성(湖南省)으로, 조선의용대 제2구대는 호북성(湖北省)으로 작전지역을 이 동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작전지역 이동 후 진지선전대(陣地宣傳隊)와 유격선전 대(遊擊宣傳隊)로 나누어 일본군을 상대로 반전 선동연설을 하거나 반전전단을 살포하였다. 1941년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華北支隊)가 건립된 데 이어 1942년 7월 중 순 태항산(太行山)에서 개최된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 제2차 대표대회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으로 개칭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화북지대(華北支隊) 로 개칭하여 화북조선독립동맹 산하로 배속하였다. 1941년 5, 6월경부터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화북지대 제1대 제1분대 대원으 로 활동하던 최지남은 1944년 8월 이전, 조선의용군의 반소탕작전(反掃蕩作戰)에 참여해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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