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進鶴
1892-01-03 ~ 1941-11-2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진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2년 4월 부산(釜山)에서 재미 하와이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과 연계하여 동래군(東萊郡)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4월 22일 부산 좌천정(佐川町)에 거주하는 이소줄(李小茁)ㆍ김주봉(金珠奉)ㆍ김지암(金持岩), 동래군 서면(西面)에 거주하는 서유준(徐有駿), 영주정(瀛州町)에 거주하는 박홍수(朴洪守)ㆍ고규주(高奎柱) 등과 협의하여, 하와이에 본부를 둔 조선독립단과 연락하고 동래군 서면 당감면(堂甘面)에 거주하는 부호(富豪) 윤두등(尹斗謄)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공갈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2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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