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達
1896-11-19 ~ 1972-12-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창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에서 이기훈(李起薰)·윤상구(尹商求)·이응식(李應植)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죽면 두현리에서 도로수리를 하는 인부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라”고 권하고, 두현리의 주민 수백명과 이죽면 죽산리 죽산경찰관주재소와 이죽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최창달은 체포되어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고, 1919년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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