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模
1923-09-01 ~ 2011-11-01·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창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광주(光州) 사람이다. 1932년 5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소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 4월 대판시(大阪市) 북구(北區) 남상정(南森町)에 소재한 대판공학교(大阪工學校) 야간부 전기과에 입학하여 1944년 3월에 졸업하였다. 대판공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4월 육군병기학교 생도 채용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민족차별로 인해 불합격되었다. 이후 그는 급우들에게 부관연락선(釜關聯絡船) 격침사건을 한국인의 의거로 돌려 이를 찬양하고, 또한 경도(京都) 시내에는 한인 학생들의 대대적인 독립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폄으로써 한인들의 항일독립의식을 고취시키던 중 일경에 붙잡혀 1944년 6월 30일 대판구재판소(大阪區裁判所)에서 소위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임시취체법(臨時取締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199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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